24시간 파티 피플 (24 Hour Party People)>. 올 해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그리고 이 달 말 열리는 유럽 영화제를 통해 드디어 만날 수 있게된 마이클 윈터바텀(Michael Winterbottom)의 2000년 작인 이 영화는 음악으로 이끌어 가는 드라마와 코미디이기 전에 그 자체로서 맨체스터(Manchester) 음악에 대한 엘러지이며 헌사이다.
<24시간 파티 피플>이란 영화 제목을 제공한 밴드,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와 란 곡으로 해피 먼데이스에게 밴드 명을 제공한 뉴 오더(New Order)와 자살이란 비극으로 뉴 오더를 탄생시키고만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그들에 대한 기억을 주축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저 단어들로 유추해볼 수 있듯 맨체스터 댄스뮤직을 이야기하며 그에 대해 아낌없는 애정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허나 맨체스터에 대한 애정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며 영화를 보는 또한 24시간 파티 피플 이란 제목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사람들에게로 전이된다. 조이 디비전, 뉴 오더, 해피 먼데이스와 함께 하시엔다, 팩토리 레코드, 토니 윌슨, 배기 씬, 매드체스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로.

Ian Curtis
영국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40만이 약간 넘는 도시 맨체스터(Manchester). 런던 이북은 영국이라고 치지도 않는, 오직 남부만을 정통이라 생각하는 영국에서 맨체스터는 결코 중심부일 수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 중반까지 이어졌던 맨체스터의 음악은 결국 맨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음악적 토양이 풍부한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음악으로 중심부 런던을 침공한 쇠락한 주변 도시, 맨체스터.
하지만 맨체스터가 처음부터 중심지 공략에 성공한 주변 부였던 것은 아니다. 60년대와 그 이전 맨체스터는 다른 지역과 차별점이 없었다. 옆 동네 리버풀(Liverpool)에서 세상을 뒤엎고 예수보다 위대하다는 비틀즈(The Beatles)가 나왔던 60년대에 맨체스터에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타 팝 밴드들이 있었다. 1961년에 결성한 프레디 앤 드리머스(Freddie & the Dreamers)와 그 다음 해에 결성된 홀리스(Hollies)에게 비틀즈 워너비라는 별칭을 붙이는 것은 몰이해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서 맨체스터만의 음악 색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맨체스터는 중심도시의 주류음악에 침공 당한 주변 중소 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듣는 홀리스는 차라리 애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의 기운마저 감도니 이건 맨체스터 씬의 주요한 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기타 팝의 전통과 댄스 비트에의 애정 중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기 힘들다.
멍하던 맨체스터를 자명종을 울려 깨운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맨체스터 출신이 아닌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였다. 75년에 결성되어 그 이름만으로 펑크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무게감을 갖고 있는 섹스 피스톨즈는 모든 이가 알고 있듯 세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복시키고 뒤흔들었다. 결국엔 똑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죽여갔지만 말이다. 같은 해 결성한 버즈콕스(Buzzcocks)는 맨체스터 출신의 펑크 밴드였지만 오히려 맨체스터 음악에 끼친 영향은 섹스 피스톨즈 만 하다고 할 수 없다. 전반적인 영향력은 말할 것이 없으려니와 섹스 피스톨즈에 대한 정반합의 과정으로 맨체스터 사운드의 효시이자 현재 가장 중요한 영국의 고전인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이 탄생했던 것이다. (격렬하진 않았으나 멜로디와 훅의 측면에선 빠지지 않았던 펑크 밴드 버즈콕스는 후에 XTC의 작은형이자 허스커 두Husker Du 의 삼촌이 된다.)

Joy Division
조이 디비전은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섹스 피스톨즈 공연을 본 후 밴드 결성을 결심한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 피터 훅(Peter Hook)과 테리 메이슨(은 초기 멤버이며 조이 디비전의 드러머는 오래가질 못했는데 여러 번 교체를 거쳐 뉴 오더까지 이어지는 스테판 모리스 Stephen Morris가 자리를 잡는다)으로 형태를 갖춘다. 그 후 보컬을 열심히 구하던 중 밴드를 지배하는 영혼이 되는 이안 커티스(Ian Curtis)를 만나 완성된다. 조이 디비전의 결성은 섹스 피스톨즈를 통했으며 그들이 첫 무대 데뷔는 버즈콕스 공연 때였다. 게다가 그들의 능력을 인정한 팩토리 레코드 사장 토니 윌슨에 의해 픽업되어 작업한 첫 앨범은 (조이 디비전의 손으로 전량 폐기되었으나 남겨졌다면) 진정한 펑크 앨범이 될 수도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에서 드러나듯 펑크의 영향 아래 조이 디비전은 태어난다.
그러나 현재까지 뉴 오더를 이끌고 있는 버나드 섬너의 감각과 암울한 영혼으로 밴드를 지배한 이언 커티스 특유의 발산을 통해 펑크는 에너지와 폭력성이 음악 깊은 곳에 녹아든 형태로 조이 디비전에 남게된다. 오히려 조이 디비전은 암울하리만큼 무거운 비트의 댄스와 그마만큼 무거운 가사 속에서 펑크를 벗었다. 펑크와 댄스의 완벽하고 기이한 조합, 그 음악은 결국엔 포스트 펑크의 효시를 알렸고 포스트 펑크세대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모든 것은 조이 디비전이 죽은 후 일어났다. 발작 증세와 그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과 싸우던 이언 커티스는 결국 80년 5월 18일 자살했다. 77년에 시작된 조이 디비전은 멤버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이어나갈 수 없다는 그들의 말처럼 자살과 동시에 해체했다. 그렇기에 그들 활동 당시 최고의 차트 성적은 가 기록한 싱글 차트 13위였다. 하지만 언제나 고전과 전통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으며 팝의 종주국이라고 불려졌던 명성은 온고지신의 미덕 아래 나온 것이었음을 아는 영국은 최근 NME(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최고 古 & 高의 음악지)가 창간 50주년으로 마련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이란 코너를 통해 에게 1위라는 영광을 선사한다. 이러고 보면 '우리는 요즘 더 유명한 것 같아요'라는 버나드 섬너의 말은 꿀 바른 듯 짝짝 들어맞는 것이다. 이언 커티스를 제외한 세 사람은 뉴 오더(New Order)를 결성하였으며 조이 디비전 때와는 다른 날렵한 무게의 사운드를 선보인다. 하지만 그 본질은 댄스뮤직이었다. 시원찮은 댄스뮤직을 펑크의 에너지 그리고 락의 전통과 결합시키며 결국엔 궁극의 팝의 경지로 끌어올린 뉴 오더는 몇 안 되는 진정한 포스트 펑크 씬의 주자였으며 신스 팝의 절정을 이루어낸 밴드였다. 허나 뉴 오더가 80년대 뉴 웨이브 씬에서 가지는 위치보다 그 후 맨체스터 사운드에 끼친 영향력은 더 큰 것이다. 뉴 오더는 이후 팩토리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는 모든 매드체스터 그룹에게 직간접의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맨체스터를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흔들었던 하우스 댄스뮤직의 시작이었고 매드체스터의 태동이 되었던 것이다.

The Smiths
한 지역 전체에 씬이 만들어져 중심부까지 공략했던 역사로는 유일 무삼(그것과 비슷한 모양의 90년대 초반 시애틀 락 씬에 대한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한 90년대 매드체스터는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가 잉태한 댄스뮤직을 자신의 아버지로 두고 있다. 그리고 매드체스터의 어머니이자 또 하나의 뿌리가 되는 것은 기타 팝이다. 세상 모든 기타 팝 밴드들은 비틀즈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맨체스터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디와 메이져를 통틀어 기타 팝 밴드들의 아버지는 비틀즈고 특히 인디씬 일 경우 그들의 작은 형님은 틴에이지 팬클럽 - Teenage Fanclub 이다. 기타 팝 밴드들이 그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진정 험난하고 어렵다.) 하지만 맨체스터에는 직계선배가 있으니 바로 맨체스터에서 시작하여 영국을 흔든 첫 밴드가 되는 스미스(The Smiths)이다. 자니 마(Johnny Marr)의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와 모리씨(Morrissey)의 연약 감성 표 가사라는 천하 대적할 자 없는 무기를 가진 기타 팝 밴드인 스미스는 주류 팝에 대한 그 시대의 얼터너티브였고 현재는 전설이 되었다. 마초의 기운이라고는 좀체 느낄 수 없는 사운드와 보컬은 그때까지의 락에 대한 반발과도 같았고 락에 대한 애정으로 중무장한 자니 마와 궁극의 팝 주의자 모리씨의 기묘한 긴장감은 락으로 보아도 팝으로 보아도 빠지지 않은 사운드와 정신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편집증 적인 마력으로 견고한 팬 층을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이며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완전히 까발리는 것보다 보일 듯 말듯하다는 신비감을 유지할 때 더욱 매혹적이라는 것을 후대 브릿 씬에게 알린 모리씨. 뉴욕 돌스(The New York Dolls)의 팬클럽 회장을 맡았을 만큼 펑크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또한 팝을 사랑한 그는 영국이 남긴 80년대의 고고한 자존심이고 스미스의 반쪽이었다. 하지만 전체 브릿 씬이 아닌 맨체스터를 놓고 보았을 때는 스톤 로지스를 흐르는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는 기타, 매드체스터가 지나간 후 솟아난 기타 팝 밴드 속을 흐르는 자니 마의 흔적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매드체스터를 단순한 댄스 씬이 아니게 한 주류의 사탕발림을 모르는 인디 정신은 뉴 오더와 스미스 전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스미스와 뉴 오더, 기타 팝과 댄스뮤직의 토양 아래서 매드체스터가 태어났다. 그러나 매드체스터가 성장을 마치기 위해서는 자양분이 필요했고 그 자양분은 단순히 음악적인 부분으로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하는 밴드가 있어야 하고 밴드가 있으면 앨범을 찍어줄 레코드사가 있어야하고 밴드가 설 무대가 있어야하고 그 음악을 즐겨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맨체스터에서 매드체스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처럼 큰 댄스 씬이 발발한 것은 그 자양분이 유별났기 때문이다. 망해버린 공업도 시 이자 별 볼 것 없는 주변부 도시의 젊은이들의 삶이란 희망의 빛이 없는 것이다. 버나드 섬너가 오래 전 인터뷰에서 남겼던 "맨체스터에서 좋은 밴드가 많이 나오는 것은 망한 도시 맨체스터라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음악밖에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어찌 보면 뼈가 있는 말이다. 그런 절망과 어둠 속에서 젊은이들은 뉴 오더 이래로 꽃핀 애시드 하우스 댄스뮤직에서 돌파구와 희망 그리고 변화를 찾으려 하였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매드체스터의 고향이 되는 클럽, 하시엔다와 같은 곳이 24시간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24시간 파티 피플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조건들 속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락과 댄스의 가장 절묘한 조합이며, 팝의 80년대로 인한 락의 공백기를 한번에 메웠고, 90년대 초 중반 브릿 씬 중흥의 토대가 된, 듣고 있노라면 병석에서 전전긍긍하던 디스크 및 관절염 환자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는 매드체스터(Mad-chester) 인 것이다.

The Stone Roses
맨체스터 하우스 댄스 음악들이 처음부터 지역을 넘어선 광범위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전국적인 열풍으로 발전할 수 있던 것은 바로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와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같은 뛰어난 뮤지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 스콰이어(John Squire)와 이안 브라운(Ian Brown)의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는 데뷔 앨범 [The Stone Roses]에서 매드체스터의 선두주자이며 90년대 가장 쿨 한 밴드로서 그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스톤 로지스의 음악에 면면히 흐르는 향락에의 동경과 향수는 그 시절 맨체스터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기타 중심의 사운드에서도 저항할 수 없이 사람들 뒤흔드는 댄스 비트는 그 시절 맨체스터 음악에 다름 아니었다. 어쩌면 현재까지 활동하는 샬라탄스(Charlatans)보다도 더 동시대 밴드들에게 끼친 영향이 큰 그들은 60년대 기타 팝의 전통, 80년대의 댄스비트 그리고 그 스스로 90년대 브릿 스타들의 모범답안이 되어버린 오만 애티튜드를 모두 가진 환상 삼각비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해피 먼데이스와 비교하면 그들에게서는 댄스비트보다 오히려 기타 팝과 고전 락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데뷔 앨범 이후 5년 만에 발매된 두 번 째 앨범 [Second Coming]에서 묻어나는 블루스 락과 하드 록의 흔적은 일간 수긍이 가는 면이기도 하다 데뷔앨범 발매 후 5년 만에 발표한 두 번 째 앨범. 그리고 그 앨범으로 스톤 로지스는 서포모어 징크스의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토록 유망하고 재능 있던 밴드를 5년 간이나 손발을 묶어 놓았던 것은 다름 아닌 괴물 같은 뮤직비즈니스의 생리였다. 데뷔 앨범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말은 절대 찬사로 그칠 말이 아니다. 1985년에서 1996년까지 11년 밴드 활동을 우리는 단지 데뷔앨범의 흔적으로만 기억한다. 그리고 95년 글래스톤베리 헤드라이너로 정해져 있던 그들이 존 스콰이어의 손가락 부상으로 불참하며 펄프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던 일.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펄프는 자신들의 팝을 폭발시키며 씬을 정복했다는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 다음 밴드들에게 어이없이 바톤을 터치하며 사라졌다. 80년대 팝의 시대를 거쳐오며 브릿 락 씬이 겪은 거대한 공백기를 단숨에 메워준 그리고 그간 젊은이들이 목말라하던 나 잘났어 애티튜드를 사정없이 드러내며 결국 음악 외적인 것으로도 사람들을 광분하게 했던 스톤 로지스의 두 사람, 이언 브라운과 존 스콰이어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도 모두 각자 갈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다). 대왕 원숭이 이언 브라운은 솔로 앨범들이 차례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며 잘 나가고 있는 듯하다가 요즘엔 음악 외적인 일로 지면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으며 , 존 스콰이어는 "나는 왜 내가 노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있었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며 올해 솔로 앨범 [Time Changes Everything]을 발표했다. 그 속의 사운드는 존 스콰이어의 본연의 뿌리인 블루스 락에 대한 또 한번의 회귀였다.

Happy Mondays
스톤 로지스에 비해 주목을 덜 받고 있으나, <24 시간 파티 피플>의 제목을 제공하고 자신들의 EP 을 통해 매드체스터란 이름을 맨체스터에 부여한, 결국엔 밴드 활동으로 맨체스터 씬 자체를 정의한 사람은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다. 지금에와 생각해보면 그들이 스톤 로지스 만한 명예를 누리지 못했던 것은 아주 단순하게 기타 중심의 팝에서 빗나간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기타 팝과 올드 락의 자식이었던 스톤 로지스와는 다르게 그들은 힙합과 펑크를 부모로, 사이키델릭을 대부로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탄생한 해피 먼데이스의 하우스 뮤직은 하시엔다를 중심으로 하는 씬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뼛속부터 치고 들어올 것 같은 헤비한 중량의 비트 속에서 숀 라이더(Shaun Ryder)는 매드체스터의 다른 이름, 배기(baggy)씬이 의미하는 바처럼 늘어진 희망을 냉소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랬다. 하시엔다의 플로어와 하우스 댄스뮤직 그리고 엑스타시를 비롯한 약물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현실을 외면한 늘어진 희망을 찾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매드체스터, 광기의 맨체스터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해피 먼데이스 만큼 그것을 확실히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해피 먼데이스는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와 마찬가지로 하시엔다 소유의 팩토리 레코드에서 앨범을 발매했으며 스톤 로지스와 함께 매드체스터의 범위를 맨체스터에서 영국으로 넓혔다. 그리고 아이러닉하게도 하시엔다의 종말 그리고 매드체스터의 종말도 그들과 함께였다. 해피 먼데이스는 레코드사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 주 앨범 차트 1위를 했던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 이후 계속 판매고가 부진했고 그것이 하시엔다와 팩토리 레코드가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삶에 별 희망이 없는 지독한 중독자 정키의 아우라를 그대로 뿜어낸 숀 라이더(Shaun Ryder)는 "맨체스터는 마약의 디즈니랜드다" 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이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의 예견이라도 되는 마냥 드럭을 촉진제로 피어난 매드체스터는 드럭과 연루된 갱과 폭력으로 파괴되었다. 하시엔다의 플로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매드체스터씬의 주자, 매드체스터의 폭발과 종말을 이끈 사람, 드럭 만큼이나 헤비한 댄스 비트가 무엇인지 알았던 해피 먼데이스는 진정 <24시간 파티 피플>에서 회고할만한 매드체스터의 본질이었다.

New Order
맨체스터 댄스 씬이 하이프 되면서 뜬금 없는 합승 족들이 생겼는데 그 중 인스파이럴 카펫츠(Inspiral Carpets)는 타의에 의한 합승에 다름 아니었다. 강한 인디 정신을 가진 인스파이럴 카펫츠는 댄스 플로어에서 훌륭하게 활용되는 비트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매드체스터 일족으로 분류할만하나 그들의 뿌리는 차라리 락큰롤에 가까웠다. 해몬드 오르갠을 사용하는 사운드는 클린트 분(Clint Boon)이 "해몬드 오르갠을 쓴다고 해서 모두 60년대 사이키델릭은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으나 분명 사이키델릭의 뿌리를 가지고있었다. 오히려 매드체스터 부흥기에는 이 씬 얼마 못 간다, 두고 봐라는 식의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언 커티스를 문득 문득 느끼게 하는 어둑어둑한 그들의 가사는 분노와 냉소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션 라이더가 노래하는 늘어진 희망 속에 담겨진 맨체스터 젊은이들의 속내였다. 버나드 섬너의 말처럼 음악으로서 탈출구를 찾으려했던 숀 라이더의 배기한 희망 속엔 결국 인스파이럴 카펫츠 혹은 클린트 분의 분노와 냉소 절망이 녹아있었던 것이다. 송 라이팅 자체가 락큰롤에 기반하고 있었던 인스파이럴 카펫츠였으나 진정 뜬금 없이 , 니가 한 말이 맞았어, 이 씬 오래 못 가네 라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이야기할 때에 [Revenge of the Goldfish]를 들고 나타나 그 안의 로 매드체스터의 사라지는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진정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뿌리처럼 보이는 펑크와 사이키델릭이었을까, 아니면 와 같은 매드체스터의 흔적이었을까.

Charlatans
하지만 이 위의 밴드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고 지금 남은 매드체스터의 자식은 오직 샬라탄스(Charlatans)다. 스톤 로지스 만한 애티튜드와 팝 사운드는 아니었고 뼈 속까지 흔들어대는 해피 먼데이스의 비트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멜로디도 없었던 그들이 가졌던 것은 사이키델릭과 락큰롤 그리고 댄스비트를 교묘히 가로지르는 그네 타기 능력 이였고 그 속에서 그들은 상당한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은 비틀즈가 아니라 롤링 스톤즈이며 팝이 아니라 사이키델릭의 자식임을 이야기하는 데뷔 앨범 [Some Friendly]는 진정 비범한 사운드를 뿜어내고 있었다. 스톤 로지스의 공연을 본 후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과 접근방법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여 탄생한 샬라탄스는 결국에는 스톤 로지스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은 기타가 아닌 해몬드 오르갠을 사운드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고 사람을 흔들면서도 헤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불멸의 싱글인 가 들어있는 두 번째 앨범[Between 10th and 11th]은 너무 팝 적이라 좋아하지 않는다는 밴드의 말은, 댄스비트와 록큰롤 그리고 사이키델릭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 스텝을 밟았던 그들의 행보에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마치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이 [Screamadelica] 이후 문득 록큰롤과 블루스로 돌아서며 [Give Out But Don't Give Up]로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다가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Vanishing Point]으로 돌아왔던 그 기행(奇行)처럼.
샬라탄스 최대 위기는 사운드의 핵이던 해몬드 오르갠 주자 롭 콜린스(Rob Collins)의 죽음이었다. 그전 롭 콜린스가 차량절도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 살던 8개월 동안도 오직 너만을 기다리겠어, 우리에게 다른 사람은 있을 수 없어 라며 수절을 지키며 끈끈한 멤버 애를 자랑한 (팀 버제스의 무대매너를 닮았으면서도 허구언날 치고 박고 싸우는 오아시스 눈썹형제들하고는 어찌 이리 다르신가) 샬라탄스 였기에 그의 죽음은 밴드의 존립을 위태하게 만들 뻔했다. 그러나 그들은 97년 [Tellin' Stories]를 발표했고 그 앨범을 롭 콜린스에게 헌정했으며 그리고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아마도 비즈니스적으로 가장 영민한 팀은 이들이 아니었을까, 모두들 가고 없는 마당에 말이다.

Oasis
어찌되었든 스톤 로지스와 해피 먼데이스의 소모는 매드체스터의 마지막을 예감케 했으며 맨체스터 젊은이들의 희망이었던 드럭은 돈의 흐름과 연관되었고 썩은 고기에 구더기가 끓듯 거기에 갱 단이 개입하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실제적인 폭력을 휘두르며 하시엔다의 종말을 가져왔고 하나의 탈출구였던 드럭은 기쁨의 원천이자 또 하나의 탈출구였던 음악을 쇠하게 하였다.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 하지만 한 시대 한 지역을 뒤흔든 매드체스터 무브먼트의 영향력은 90년대 중반의 브릿 씬 중흥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음악으로야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다 못해 스톤 로지스의 그 건방진 태도를 떠올려 보라. 자기는 롤링 스톤즈보다 위대한 밴드라나 뭐라나 떠들어댔던 그들은 "우리는 앨범 3장을 내고 나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라거나 "지금 이 쓰레기같은 영국 음악계에서 그래도 들을만한 밴드가 셋 있는데 스톤 로지스 , 프라이멀 스크림 그리고 우리이다'라는 말을 참으로 낯짝 두껍게도 해댔던 맨체스터 바로 아랫동네 위건 출신 버브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건방지다, 뻔뻔하게, 라고 해도 락에는 그런 아이콘이 필요함을, 그런 태도가 필요함을 다시금 일깨운 것이, 의 짜릿함을 안겨준 것이 스톤 로지스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말이 필요 없는 숱댕이 눈썹 형제의 오아시스(Oasis)에게서도 맨체스터의 흔적은 빼놓을 수 없다. 그 스스로 뉴 오더와 함께 현재 맨체스터에서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밴드인 오아시스는 분명 맨체스터 사운드의 영향력 아래서 시작하였다. 스톤 로지스 공연을 보고 갑자기 밴드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와 동생의 결심에 놀라서 귀가한 형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오아시스의 시작이었음은 이미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노엘은 그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보컬 테스트에서 떨어지고 기타 테크니션으로 자리잡은 그는 인스파이럴 카펫츠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매드체스터의 탬버린 보이 샬라탄스의 팀 버제스를 똑 닮은 리엄 갤러거의 무대매너는 또 어떤 모양새인가. 궁극으로는 비틀즈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나 오아시스의 순간순간 모습은 매드체스터의 기이한 합체 물을 보는 것만 같다.




Elbow
펑크의 폭발 속에서 태어나 결국 펑크를 대체한 포스트 펑크의 효시가 된 조이 디비전과 80년대 뉴 웨이브와 신스 팝을 가장 짜릿한 형태로 안겨준 뉴 오더. 이 시대 기타 팝 그리고 인디 팝의 모범이 되는 스미스와 제임스(James). 80년대 카멜레온 팝의 시대를 가뿐하게 날려버린 용감무쌍 락큰롤 정신의 댄스뮤직을 앞세운 매드체스터와 브릿 팝 시대의 정점을 이룬 오아시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죽어 가는 락큰롤을 회생시킨 용감무쌍한 오아시스 이후, 맨체스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 뜬금 없이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는 이야기하지 마시길. 그 사람들은 연배도 오아시스와 근 동년배일만큼 오래 되었잖는가. 게다가 케미컬 브라더스는 아무래도 맨체스터 출신 같지가 않다. 그들이 샬라탄스와 작업하며 EP([Charlatans Vs. the Chemical Brothers])까지 내어놓았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뿌리는 아무래도 맨체스터 애시드 댄스뮤직에 있는 것 같다 이야기해도 말이다. 차라리 저 먼데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이 훨씬 맨체스터 스럽지. 그러고 보면 롭 콜린스의 죽음으로 샬라탄스의 공연이 힘들 때 대신 참여해준 프라이멀 스크림의 키보디스트 마틴 더피(Martin Duffy)의 자발적인 어시스트는 의미 있으면서도 눈물겨운 것이다. 작년 등장한 신예들 중 유달리 똘망 똘망 했던 맨체스터 출신 엘보우(Elbow)와 이제 영국을 대표하는 격으로까지 오른 서포모어 징크스를 모르는 도브스(Doves)는 분명 영특한 밴드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뭔가가 2%아닌 22% 정도가 모자라며 요새 우후죽순하고 있는 고만고만한 기타 팝 밴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모두들 탈 지역을 이야기하는 이 때에 맨체스터 한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질없을까. 아니, 그러기엔 10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24시간 파티 피플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뛴다. 그 음악의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가슴 뛰는 풍부한 음악적 토양을 그대로 썩힐 리가 없다.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그걸 닮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펑크 위에서 피어난 조이 디비전이 펑크였던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주류를 뒤 흔들어줄 멋진 밴드가 나와주지 않고 있는, 지지부진한 현재 영국 씬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팝이 종주국이라는 명성이면서도 실은 이빨 빠진 사자가 되어가고 있는 영국을 보면서 갖는 질문은, 지금으로선 그렇다. 맨체스터, 너희는 이제 무엇을 들려 줄꺼니?


== 라디오 선곡 표 (시대 순 별) ==
freddie & the dreamers
- You Were Made for Me
- I'm Telling Now

hollies
- Long Cool Woman (In a Black Dress)
-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buzzcocks
- Everybody's Happy Nowadays
- Noise Annoys

joy division
- Transmission
- Love Will Tear Us Apart
- Atmosphere

new order
- Temptation
- Bizarre Love Triangle
- Blue Monday
- Crystal
- 60 MPH

the smiths
-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 This Charming Man
-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morrissey
- Suedehead
- I Know It's Gonna Happen Someday

james
- Seven
- Black Hole

stone roses
- I Wanna Be Adored
- She Bangs the Drums
- Elephant Stone

happy mondays
- Step On
- Loose Fit
- Hallelujah
- 24 Hour Party People

inspiral carpets
- Generations
- Commercial Rain
- Saturn 5

charlatans
- Only One I Know
- How High
- Forever
- Weirdo

oasis
- Rock 'N' Roll Star
- Live Forever
- Supersonic
- Whatever

northern uproar
- Rollercoaster

doves
- There Goes the Fear
- Catch the Sun

elbow
- Asleep in the Back
- Newborn

baby namboos
- Ancoats 2zambia

gasseum's review about manchester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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