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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죽음이 한번, 두번, 그리고 여러번 이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무덤덤해진다.
처음에는 방송에서 나오는 저 멀리 아프리카의 사는 사람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그리곤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또한 자신의 주변의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늙어가는것이 두려운건 뭔갈 알아가는 즐거움보다
뭔가에 익숙해져버려 지쳐가는 자신이 두렵기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자신마져 철저하게 타인화는 순간
자신의 죽음에 마져 무기력해진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뿐이다.
2.
언제나 처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주말 저녁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제사를 지내러가버렸고
홀로 남아있는 난 감기기운에 귀차니즘이 더해진체로
여느때처럼 멍하니 드라마나 보며 낄낄되고 있었을뿐이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고 포만감속에서
의자에 앉아 지나간 트위터 글을 읽었을뿐이다.
양 스피커에선 아침에 골라논 29곡의 cf 모음곡이 재생중이었고
3번째 곡이 재생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군가의 죽음과 3번째곡.
무엇이 날 울게만든걸까?
3.
3번째 곡은 평범한 피아노곡이었을뿐이고 순서따윈 상관없다.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죽음역시 내가 관심이라도 가졌을만한 죽음의
리스트에서 3번째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가 죽었을때 슬펐더 일이 언제였을까?
첫번째의 죽음이 기억났다.
나와 가장 마음으로 친했던 막내 이모의 죽음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슬펐던 타인의 죽음이 떠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을때 난 누구보다 슬퍼했었다.
그리고 아마 이제 나와 가까운 이의 죽음에도 타인의 죽음에도
앞의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품진 못할꺼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오늘 누군가의 죽음에 슬픈게 아니라
그냥 흘러나온 곡이 슬퍼서 울었다라고 난 생각한다.
난 이미 죽음에 무덤덤한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