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싶어서.
잊고 싶어서.
고른 영화가 하필 이런 영화라니.
나도참. 어이가없다.
그러나 보고나서 그런생각이 들었다.
묵묵하지도 당당하지도 않고 어딘가
신파적이면서 엔딩 역시 너무 전형적이지만
그래도 좋았었다고.
이 영화의 초반부는 그럴듯하게 현실을 쥐어짜내어
지독한 한국사회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면서도 우리 사회에 어딘가 존재할꺼같은 현실적인 사람들.
그렇기에 우울하고 외면하고 싶어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만약 이 영화에 류승범이 나오지않았더라면 그랬을것이다.
근데 류승범은 이 빌어먹을, 그리고 사실이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유쾌하게 유머러스하게 혹은 과장되게 돌파하면서 관객과 영화사이를
조금 거리를 둔체 여유있게 볼 수 잇는 시선을 제공해준다.
그렇게보면 조금 더 만들어진 설정들이 지독하게 잔인할뿐
그속에 행동하는 캐릭터들은 어딘가 장진영화의 캐릭터들을 닮았다.
그랬기에 계속 보게됐을수도 있을수도 있고.
물론 설정된 인물들의 통일성이 없다는 느낌은 받았다.
정선경이 연기했던 캐릭터는 지나치게 무거웠고
임주완이 연기한 캐릭터는 지나치게 희화한 느낌.
오히려 그랬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나보다 못한 이들도 저렇게 살아있는데
미래에 대한 보험은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말곤
없고 시궁창보다 못한 현실을 전전하는데서 위안을 얻을까?
이 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나온다.
성공에 목말라 있는 류승범을 보고 그의 여자친구(서지혜분)는 이렇게 말한다.
"너 왜이렇게 속물이 된거니"라고.
그런데 그런 그녀가 너무 얄미웠고 불편했다.
남의 속물적인 성공에 대한 집착,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도 그런 현실에는 절대놓여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영화에서 그렇게 속물이라 외쳐대는 그 여자친구는
류승범이 지독한 현실을 목격하고 정면으로 부딪히고
좌충우돌하는 사이에도 그냥 스치듯 지나치는 이일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의 류승범이 좋았다.
자신의 현실. 매일 패전만 밥먹도록 해서 승자인터뷰조차 못하는.
타팀의 4번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면 데이트를 해주세요라고 외치지만
자신이 이 현실을 부딪히는 방법은 그 이기지 못하는 상대에게
빈볼을 던지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현실에서 빈볼을 던지고 패자투수가 될뿐이지만
그걸 보고 매력을 느낀 서지혜처럼
나에게도 그런 류승범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부조리하고 일그러진 현실. 불공정한 사회에 대해 비판하지만
그 현실의 가장 밑바닥을 '진짜 현실'처럼 느끼는 이는 아마도 없을것이다.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남길 여유는 그런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모두 위쪽방향이고 아래에 놓인 수많은 광경들은
'현실'에 놓여있지만 죽어도 들어가기 싫은, 다만 관찰하고 싶은 곳일뿐이다.
* 오프닝의 장면중에 하난데 특수카메라로 현실을 장난감처럼 느끼게 해주는 필터링이 들어갔다.
이 영화가 말하는 방법과 오프닝이 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