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내가 처음 알게 된건 다른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그사람은 아마 아저씨이상의 연배였고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연배가 다소 어색하긴 해도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도 세월의 간극은 작지 않았다. 2002년은 내게 특별한경험이었다. 학교에서 아싸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자각하던 나는 그때쯤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는데 심취한 시기였다. 그러나 난 여전히 무언가를 함께 행동하는데 근본적으로 어색한 아이였고 천성적으로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 뜨거웠던 2002년 여름 월드컵의 현장을 먼발치에서 목도하면서 그 피끓는 에너지의 현장에 완벽하게 동화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 한편 그 많은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마 그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2002년의 사건에서 난 주변인으로밖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월드컵 열기가 식어갈 무렵 뜨거웠던 에너지들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고 디씨라는 커뮤니티는 조그마한 디지탈 카메라 커뮤니티에서 쌍방향 소통 인터넷 문화의 하나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정치와 스포츠 아니 모든 사회,문화 전반적인 것들이 그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재해석 되어 퍼져나갔다. 그것 들 속에 그 사람도 존재했다. 그때쯤 내자신도 일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스스로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다녔던 대학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고 그때쯤 내 자신은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조차 잘 몰랐던 나에게 그해 겨울은 가장 뜨겁고도 빛났던 겨울중의 하나였다. 타고난 소심한 성격은 완벽하게 고칠수 없었지만 그 소심한 성격을 최대한 커버할수 있는 무모할정도로의 과단성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그때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때까지도 난 그냥 저냥 그의 이미지 혹은 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열광하던 한명의 잠재적 지지자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때의 나는 디씨라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것들에 열광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정치인 혹은 대선 후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익숙하되 아직까지 인간적으로 거리가 먼 인간에 지나지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2002년의 사건에서 난 주변인으로밖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월드컵 열기가 식어갈 무렵 뜨거웠던 에너지들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고 디씨라는 커뮤니티는 조그마한 디지탈 카메라 커뮤니티에서 쌍방향 소통 인터넷 문화의 하나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정치와 스포츠 아니 모든 사회,문화 전반적인 것들이 그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재해석 되어 퍼져나갔다. 그것 들 속에 그 사람도 존재했다. 그때쯤 내자신도 일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스스로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다녔던 대학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고 그때쯤 내 자신은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조차 잘 몰랐던 나에게 그해 겨울은 가장 뜨겁고도 빛났던 겨울중의 하나였다. 타고난 소심한 성격은 완벽하게 고칠수 없었지만 그 소심한 성격을 최대한 커버할수 있는 무모할정도로의 과단성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그때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때까지도 난 그냥 저냥 그의 이미지 혹은 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열광하던 한명의 잠재적 지지자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때의 나는 디씨라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것들에 열광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정치인 혹은 대선 후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익숙하되 아직까지 인간적으로 거리가 먼 인간에 지나지않았던 것 같다.
2002년 12월, 학교는 방학을 맞았고 난 학교에 남아 생애 처음으로 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즐기고 새로운 배움에 자극받던 시기였기도 했다. 그 웃고 즐기는 가운데 대선은 그렇게 다가왔다. 물론 그때쯤 나에게도 수많은 일들이 있던 시기였기도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적극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무모한 여정을 해본 시기도 그때쯤이었다. 난 2002년 12월 19일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날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우리의 모든 눈은 티비 모니터에 교정되어 있었다. 그 티비속 숫자들이 하나하나 바뀌어나갈때마다 우리의 입안에선 탄성과 안도감, 비명과 환호가 뒤섞여 터져나왔다. 그리고 2002년 12월 20일 자정쯤 텅빈 대학 빈 교정의 한 강의실에서 우리는 기쁨에 겨워 서로를 얼싸앉고 울음과 웃음을 번갈아가면서 짓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에게 어느새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만들어낸 우리의 작은 행동이 이렇게 큰 역사의 경험을 체득하게 해줄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단지 그것은 2002년 여름의 에너지들의 희망섞인 결과물 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함께 있던 교수님의 입에서 터져나왔던 몇마디 말들이 기억난다. "이제부터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살게될거야." 그리고 우린 취기가 올랐고 아카데믹한 토론들이 다음날 새벽까지도 이어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건 새로운 대한민국을 누리는 일뿐이라고 여기면서. -비록 짧게 언급하지만. 대선전 한달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대선 후보 노무현이 걸었던 여정은 전 국민의 스포츠요 영화요 드라마였다. 심지어는 마지막 단일화와 단일화가 깨어지는 과정까지도- 그것은 그를 지지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아마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이다.
2003년 10월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는, 지금은 거의 가지않는, 싸이 게시판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그에 대한 글의 제목은 "죄송합니다" 였다. 지금 내기억은 흐릿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탄핵을 당한게 언제였는지조차 뚜렷하게 기억나지않기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글을 적어나가야 할듯하다. 어쨌은 2003년때쯤 내가 그를 알수 있는 방법은 언론뿐이었다. 그때 내가 서프같은 정치웹진들을 알고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확실치 않기에 말은 못하겠고 다만 그때 나에겐 다른 피끓는 청춘들처럼 자신에 일에 온통 관심이 몰렸던 시기였고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한 2003년의 기억은 고사하고 저 글을 왜 썼는지조차도 확실히 기억에 남지 않다. 그런데 내가 저글을 읽고 씁쓸했던 이유는 글의 내용이 그가 세상을 떠나간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른게 없어서이다. 그를 오해했었고 무관심 속에 그렇게 버려두었다라는 상황들이.
그렇게 2003년이 지나고 나의 일상생활과 그와의 접점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편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4년 3월 다시 나는 노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미 그때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기득권의 카르텔은 그의 유일한 아군이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틈타서 그를 대통령이라는 이름에서 끌어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상황은 더이상 우리가 2002년 12월 19일에 꿈꿨던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윈 기대할 수 조차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땐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조차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단지 분노했고 또 슬퍼했을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 우리의 심정들 조차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했던 추억들임을. 무기력하게 끌려나간 슈퍼맨을 보던 많은 젊은 청춘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현장속에 나 역시 끼여있었다. 촛불을 들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렇게 우린 그 시대의 희망이었던 슈퍼맨을 다시 돌려놓고 싶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에만 신경쓰고 싶었기에. 우리가 그때 했던 행동은 옳았지만 우린 단지 그를 일시적으로 힘을 빼앗긴 슈퍼맨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우리의 패착이었다. 우린 참여정부라는 시대를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슈퍼맨으로 여겼다. 그렇게 우리의 재점화된 에너지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대통령에 되돌려 놓았고 그는 거대 여당이라는 지금 보기엔 허울좋은 무기하나만을 얻어갔다. 그리고 우린 그걸 보며 보다 힘이 더 강력해진 슈퍼히어로의 귀환을 보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모든것의 해답은 역사속에 있다. 그때쯤 악당들은 깨달았다. 노골적인 방법으로 그를 끌어내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라는 것을. 그들은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가 슈퍼맨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기가 오로지 우리의 참여뿐이었다라는 사실도.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교묘하게 우리의 관심을 그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슈퍼맨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무리하게 슈퍼맨으로 추앙되었지만 그는 슈퍼맨같이 혼자 모든걸 해치울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서두에 적었던 역사속에 해답이 있다라고 한 이유를 부연설명하자면 기득권들의 그를 끌어내리는 과정이 3.1운동 이후 일제 식민지 통치 방법의 변화와 묘하게 일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고백하지만 그당시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못했다.- 3.1 운동 이전까지 강경했던 일제통치방식은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전환되는데 그 기억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근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서와서 그들의 후손인 친일파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당했다라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물론 그당시엔 알지못했던 사실이고 그때쯤 대부분의 노빠들은 자신들을 비판적 노빠 혹은 노까라는 이름의 단어로 자신을 말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 역시 조중동의 방식을 알고 있던 언론학도임에도 불구하고 수백가지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옳고 그런 정보들을 스스로 필터링해낼 여유가 없었고 결국 내 자신조차 비판적 노빠라는 이름의 안전한 단어속에 숨어 비난의 화살을 빗겨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쩔수없다라는 명목으로 '창씨계명'을 했던 우리의 선조들처럼.
그이후의 그에 대한 기억들은 내 스스로 지워내고 싶을 정도이다. 난 강남좌파의 방식으로 그를 판단하고 있었고 비판하는 조력자가 아닌 침묵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사회학도로써 배웠던 가치들이 내 스스로를 좌파라는 양식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어설픈 지식들로 무장한체 그의 행동들-그게 비록 현실적 인식의 갈등에서 만들어냈다라곤 하나-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물론 난 그렇게 모진 인간은 아니었기에 결국 그에게 해줄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의리라곤 '침묵'뿐이었다. 그런식으로 악당들은 우리를 그와 분리시키는데 성공는지도 모르겠다. 슈퍼맨인줄 알았던 평범한 그는 원래 조금더 자신을 조금 더 버릴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일뿐 이었음에도 그렇게 벌거벗겨졌고 우린 더 이상 그를 슈퍼맨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시대의 슈퍼맨의 신화는 종언을 고하였고 그 이후 기다리는건 절망의 시대일뿐이었다. 살아 숨쉬고는 있으나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젊은 시절도 슈퍼히어로의 퇴장과 함께 한때의 뜨거웠던 추억들만 남긴체 지나갔고 그이후 남은건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인간이었다.
우린 그가 홀연히 나타난 슈퍼맨이 되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를 지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모두 노빠였고 우리에게 그는 하나의 구원자였다. 그의 정부의 이름은 참여정부였다. 그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 역시 2002년의 에너지들이 온 오프라인에서 만들어 냈던 참여의 결과물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같이 향유했던 수많은 온 오프라인의 정치적 문화적 결과물들은 결국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변환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를 우리의 구원자로 여기면서 그가 모든것을 다 해줄수 있을꺼라 믿었다. 나 역시 2003년은 정신없는 한해였다. 2002년을 거쳤던 난 소심한 아이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무모할정도의 일을 과감하게 벌여나가는 청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에겐 2002년 겨울은 동시 관람했던 한 편의 영화이상의 기억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해는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그때쯤 학교라는 공간에서 노무현을 접할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 역시 다른 영상세대와는 마찬가지로 신문같은 활자물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고 그때 인터넷의 정치 뉴스의 가치는 그당시 나에겐 수많은 다른 정보들의 홍수속에 섞여있는 미약하고 재미없는 정보들의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우리를 향한 그의 외침은 그런식으로 묵살되었다.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보면서도 우린 그냥 그가 모든것을 슈퍼맨처럼 해줄수 있을꺼라 믿었던것은 그당시에 어찌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때 한 행동이었다고는 잠깐 투표장에 나가 투표를 한 것이었고 그 행동의 결과물은 엄청난것이었기에......
2003년 10월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는, 지금은 거의 가지않는, 싸이 게시판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그에 대한 글의 제목은 "죄송합니다" 였다. 지금 내기억은 흐릿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탄핵을 당한게 언제였는지조차 뚜렷하게 기억나지않기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글을 적어나가야 할듯하다. 어쨌은 2003년때쯤 내가 그를 알수 있는 방법은 언론뿐이었다. 그때 내가 서프같은 정치웹진들을 알고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확실치 않기에 말은 못하겠고 다만 그때 나에겐 다른 피끓는 청춘들처럼 자신에 일에 온통 관심이 몰렸던 시기였고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한 2003년의 기억은 고사하고 저 글을 왜 썼는지조차도 확실히 기억에 남지 않다. 그런데 내가 저글을 읽고 씁쓸했던 이유는 글의 내용이 그가 세상을 떠나간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른게 없어서이다. 그를 오해했었고 무관심 속에 그렇게 버려두었다라는 상황들이.
그렇게 2003년이 지나고 나의 일상생활과 그와의 접점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편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4년 3월 다시 나는 노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미 그때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기득권의 카르텔은 그의 유일한 아군이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틈타서 그를 대통령이라는 이름에서 끌어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상황은 더이상 우리가 2002년 12월 19일에 꿈꿨던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윈 기대할 수 조차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땐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조차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단지 분노했고 또 슬퍼했을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 우리의 심정들 조차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했던 추억들임을. 무기력하게 끌려나간 슈퍼맨을 보던 많은 젊은 청춘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현장속에 나 역시 끼여있었다. 촛불을 들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렇게 우린 그 시대의 희망이었던 슈퍼맨을 다시 돌려놓고 싶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에만 신경쓰고 싶었기에. 우리가 그때 했던 행동은 옳았지만 우린 단지 그를 일시적으로 힘을 빼앗긴 슈퍼맨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우리의 패착이었다. 우린 참여정부라는 시대를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슈퍼맨으로 여겼다. 그렇게 우리의 재점화된 에너지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대통령에 되돌려 놓았고 그는 거대 여당이라는 지금 보기엔 허울좋은 무기하나만을 얻어갔다. 그리고 우린 그걸 보며 보다 힘이 더 강력해진 슈퍼히어로의 귀환을 보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모든것의 해답은 역사속에 있다. 그때쯤 악당들은 깨달았다. 노골적인 방법으로 그를 끌어내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라는 것을. 그들은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가 슈퍼맨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기가 오로지 우리의 참여뿐이었다라는 사실도.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교묘하게 우리의 관심을 그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슈퍼맨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무리하게 슈퍼맨으로 추앙되었지만 그는 슈퍼맨같이 혼자 모든걸 해치울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서두에 적었던 역사속에 해답이 있다라고 한 이유를 부연설명하자면 기득권들의 그를 끌어내리는 과정이 3.1운동 이후 일제 식민지 통치 방법의 변화와 묘하게 일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고백하지만 그당시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못했다.- 3.1 운동 이전까지 강경했던 일제통치방식은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전환되는데 그 기억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근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서와서 그들의 후손인 친일파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당했다라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물론 그당시엔 알지못했던 사실이고 그때쯤 대부분의 노빠들은 자신들을 비판적 노빠 혹은 노까라는 이름의 단어로 자신을 말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 역시 조중동의 방식을 알고 있던 언론학도임에도 불구하고 수백가지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옳고 그런 정보들을 스스로 필터링해낼 여유가 없었고 결국 내 자신조차 비판적 노빠라는 이름의 안전한 단어속에 숨어 비난의 화살을 빗겨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쩔수없다라는 명목으로 '창씨계명'을 했던 우리의 선조들처럼.
그이후의 그에 대한 기억들은 내 스스로 지워내고 싶을 정도이다. 난 강남좌파의 방식으로 그를 판단하고 있었고 비판하는 조력자가 아닌 침묵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사회학도로써 배웠던 가치들이 내 스스로를 좌파라는 양식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어설픈 지식들로 무장한체 그의 행동들-그게 비록 현실적 인식의 갈등에서 만들어냈다라곤 하나-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물론 난 그렇게 모진 인간은 아니었기에 결국 그에게 해줄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의리라곤 '침묵'뿐이었다. 그런식으로 악당들은 우리를 그와 분리시키는데 성공는지도 모르겠다. 슈퍼맨인줄 알았던 평범한 그는 원래 조금더 자신을 조금 더 버릴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일뿐 이었음에도 그렇게 벌거벗겨졌고 우린 더 이상 그를 슈퍼맨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시대의 슈퍼맨의 신화는 종언을 고하였고 그 이후 기다리는건 절망의 시대일뿐이었다. 살아 숨쉬고는 있으나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젊은 시절도 슈퍼히어로의 퇴장과 함께 한때의 뜨거웠던 추억들만 남긴체 지나갔고 그이후 남은건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인간이었다.
난 현재의 절망의 시대에서 내 자신을 건져올리는 걸 포기하고 있다. 그리고 슈퍼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절망의 시대를 하루 하루 소비하던 나에게 갑작스레 맞은 그의 비극적 결말에 무엇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한때의 동조자였지만 그에게 "당신이 보여줄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꿨습니다." 라고 추억하는건 지금에와서 비겁한 행동이 되버렸다. 그때의 나는 그를 슈퍼맨으로 알고 있었고 그가 슈퍼맨이 아니었음을 알고 모질게 그를 버렸기에...... 나는 그의 죽음이 값싼 감상이 되어 가는 혹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가는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여전히 침묵해야 하는게 옳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그에 대한 감상을 최대한 절제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속으로 울거나 혼자서 엉엉 우는 바보같은 행동의 나날을 반복하면서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 마음속의 마지막 남은 어떤 것들이 작은 불빛이 되어 뜨겁게 내 심장을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부끄럽지만 그를 추억하는 이글을 그가 가는 마지막에 바친다.. 마지막으로 내 안의 그를 기억하면서.
"굿바이, 나의 슈퍼맨 아저씨. 노무현."
Iron & wine _ Waitin' For A Superman
"굿바이, 나의 슈퍼맨 아저씨. 노무현."
Iron & wine _ Waitin' For A Sup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