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 대한 강명석씨의 리뷰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분량은 꽤 되지만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공감할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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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과 나경은 아나운서와의 교제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벌어진 몇가지 일들. <무한도전>의 팬들은 ‘결혼 준비 잘 하길 바래’, ‘첫날 밤 잘 보내길 바래’ 등의 관련 코너를 만들 것을 건의했고(김태호 PD에 따르면 실제로 비슷한 기획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무한도전> 해당 회의 컨셉인 ‘김장특집’과 상관없이 <무한도전>속 코너 ‘무한뉴스’는 유재석과 나경은의 교제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유재석이 세트장 앞에서 수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다른 다섯명의 멤버들을 보여줬다. 찾아오는 기자들도 얼마 없이 “우리도 같은 연예인인데.....”라며 투덜거리는(그리고 기자가 온다 해도 온통 유재석에 관한 질문만 받는) 그들을.
특정 연예인의 교제 사실이 밝혀지면 토크쇼 등에서 그것을 화제로 올리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이 출연자의 사생활을 한 번 웃을 수 있는 소재로 삼고 원래 컨셉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바깥에서 벌어지는 여섯 사람의 실생활이 <무한도전>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출연진의 사생활은 곧바로 프로그램에 반영되고, 이제는 팬들도 그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여섯 사람의 사생활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무한뉴스’에서 유재석이 나경은 아나운서와 어떻게 사귀었느냐, 손을 잡았느냐 하는 것은 한 인기 연예인이 자연인으로서 가진 사생활이다. 하지만 그런 유재석을 보며 동료사이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연예인 사이의 인기 차이를 실감하는 나머지 다섯명의 모습은 '연예인‘으로서 그들의 사생활, 정확히 말하면 쇼 프로그램 뒤에 있는 연예인의 사생활이다.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한 쇼
<무한도전>은 이 부분에서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차별화된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해 닫혀 있다. 아무리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쑤시는 SBS <야심만만>이라 해도 다른 프로그램을 직접 거론한다거나, 연예인 각각의 실제 인기가 어떻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KBS <상상플러스>에서는 이휘재가 정형돈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왔지만, 다음 주 방영분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가정이지만, 정형돈과 이휘재가 실제 사이가 안좋다고 해도 <상상플러스>에서 그들의 관계를 드러내면서 서로 반목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일은 없다. 그것은 네 명의 대감이 게스트들과 사이좋게 우리말을 배운다는 <상상플러스>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은 현실에서 살고 있는 연예인들이 가상세계에서 잠시 활약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오락 프로그램에서 연예인과 오락 프로그램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암묵적인 룰을 깨는 것이다.
반면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동시킨다. 타 방송사의 경쟁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어느새 ‘어색한’ 남자가 된 정형돈은 <무한도전> 제작진의 자막에 의해 “오늘은 웃긴다.”같은 표현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바깥에서 <무한도전>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가 <무한도전>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한도전>의 ‘슈퍼모델’ 편이 흥미를 모았던 것은 그들이 단지 모델과는 동떨어진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세계의 사람들이 <무한도전>을 열등한 외모의 사람들이 모인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슈퍼모델’ 편의 시작은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여섯 멤버가 온갖 구박을 받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 스스로가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가 <무한도전>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유재석은 유재석은 여러 여성들에게 사진 촬영 제의를 받고, 박명수는 멤버들이 여성들에게 돈을 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일반적인 리얼리티 쇼와도 다르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심사위원 사이먼이 출연자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분명한 ‘리얼리티’다. 하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은 쇼에서 정한 사이먼의 캐릭터를 벗어나는 리얼리티는 보여주지 않는다. 쇼에서 사이먼과 또다른 심사위원 폴라 압둘이 ‘쇼가 끝난 뒤’ 앙숙인지, 혹은 연인 사이인지를 밝히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타블로이드 언론의 영역이다. 반면 <무한도전>은 그들의 세계 자체가 바깥 세계와 연동돼 끊임없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다. 정형돈이 바깥 세계에서 어색한 캐릭터가 되면 안에서도 어색해지고, 그것이 <무한도전>을 통해 아예 하나의 캐릭터로 강화된다. 정준하의 ‘업소경영’은 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던 당시부터 이미 다른 출연진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던 것이었다. 기존 오락 프로그램이라면 정준하의 실제 모습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것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출연진들의 실제 이야기를 오락 프로그램 안에서 풀어낸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탄생
즉, <무한도전>은 시청자가 특정 연예인의 이미지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가 누구 라인이라느니, 연예인 누구와 누구 사이가 어색하다느니 하는 것들을 알고 있거나, 혹은 연예계가 그런 곳이라고 인식해야 지금의 <무한도전>을 즐겁게 볼 수 있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이른바 ‘시청률 기사’ 사건은 <무한도전>의 독특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간극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무한도전>을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김장특집’에서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며 게임중인 출연진들에게 구덩이에 빠질 것을 채근하는 다른 출연진의 모습은 오락 프로그램이 하다하다 못해 시청률을 구걸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그렇게 시청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이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생명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아무 이유없이 남녀가 수영장에서 뒤엉켜도, 그것이 시청률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고백하지 않는다. 적어도 오락 프로그램 안에서만큼은 그들의 놀이는 순수하게 그들이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시청률 타령’은 오락 프로그램이 사실은 시청률에 얼마나 목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 개그’를 할 수 밖에 없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출연자들이 구덩이에 빠지는 모습과 시청률을 연관시키는 <무한도전>의 진행방식은 이중의 웃음을 준다. 구덩이에 빠지는 출연진의 모습이 기존 오락 프로그램처럼 출연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강조해 웃음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그것을 시청률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런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폭로와 패러디가 된다. 오락 프로그램이 사실은 그렇게 시청률에 목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출연진들이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묘사하는 순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법칙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안과 밖이 연결돼 웃음을 일으키는 <무한도전>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장면은 단지 출연진들이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 웃기거나, 아니면 “역시 오락 프로그램은 유치해”라며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무한도전>에서 보여주는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정도 시도한 것들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SBS <X맨 - 일요일이 좋다>의 전신인 ‘X맨’에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버라이어티 쇼 안에 연예인,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리얼리티를 끌어들이려 했다. <무한도전> 출연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만의 캐릭터를 쌓으며 쇼 프로그램과 현실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만든 것처럼 ‘X맨’은 길게는 6개월 이상 출연하는 고정 게스트들을 통해 몇몇 출연자들이 실제 커플 관계인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또 ‘당연하지’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수단이 돼 해당 연예인의 실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X맨’이 <X맨 - 일요일이 좋다>로 개편된 뒤로는 아예 설문조사를 통해 연예인의 실제 이미지를 조사하고, 연예인이 장기 자랑을 펼칠 때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받게 한다. 오히려 <무한도전>은 전신이었던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에서 리얼리티를 내세우지 않고 순수하게 연예인들이 몸을 굴리는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리얼리티의 개념은 ‘X맨’이 더 강하게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X맨’과 <X맨 - 일요일이 좋다>는 그 재미의 유무를 떠나 (‘X맨’도 한 때는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진짜’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그들이 진짜 커플인척 해도, 또 연예인의 사생활이 밝혀져도 그것은 웃고 즐기기 위해 끌어들인 리얼리티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리티는 리얼리티가 지향하는 원래의 가치들, 이를테면 긴장과 갈등,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턴이 반복될수록 지루해지는 버라이어티 쇼에 새로운 스토리와 장난스러우나마 약간의 긴장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로 사용될 뿐이다. 모든 것은 농담이고,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X맨’ 제작진이 리얼리티 쇼에 대해 잘 몰라서 리얼리티를 이런식으로만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버라이어티 쇼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리얼리티 쇼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었다는데 있다. SBS <야심만만>같은 토크쇼도 출연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온다. 시청자들은 게스트들이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감동보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버라이어티 쇼에 가볍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끌어들이고, 그 리얼리티마저도 결국 ‘쇼’라고 포장하는 것, 그것이 한국 버라이어티 쇼가 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매우 첨예한 갈등은 갈등대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버라이어티 쇼의 웃음으로 소화하는 독특한 영역에 도달했다. ‘빨리 친해지길 바래’에서 하하와 정형돈이 서로 어색하게 식사를 하는 것은 분명히 리얼리티 쇼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 사이에 정준하와 박명수가 빌린 돈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물론 그들은 진지하게 싸운다고 싸우지만, 그들의 다소 과장된 제스츄어나 그들을 두고 계속 놀리는 유재석의 멘트와 제작진의 자막은 그것이 코미디임을 인정한다. 이럴 때 보통의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적인 부분마저 시청자들조차 쉽게 안심하게 되는 코미디가 된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버라이어티 쇼적인 코미디와 리얼리티 쇼의 진지함이 그냥 섞이고, <무한도전>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것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심지어 하하와 정형돈 사이에 어색함 가득한 대화가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한도전>은 그 상황 자체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유재석의 멘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다. 단지 ‘김장특집’같은 버라이어티 쇼적인 요소와 ‘슈퍼모델’같은 리얼리티 쇼가 번갈아 등장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 쇼적인 요소가 버라이어티 쇼적인 방법으로 표현되고, 버라이어티 쇼적인 게임에서조차 리얼리티 쇼가 펼쳐지는 <무한도전>의 기묘한 정체성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식상해지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달리 회가 거듭할수록 예상할 수 없는 현실성을 맛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가볍고 코믹하면서도 뻔하지는 않은 그 미묘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무모한 도전이 보여준 진실
대체 어떻게? 그것이 <무한도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무모한 도전’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다. 흔히 ‘무모한 도전’은 캐릭터의 사생활을 끌고 들어온 ‘무리한 도전’에 비해 <무한도전>과 큰 연관성이 없는 프로그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모한도전’은 리얼리티적인 요소를 그다지 반영하지 않은, 정말 어려운 과제에 연예인들이 도전하는 기존 버라이어티 쇼와 크게 다를바 없는 컨셉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에서 유재석을 비롯한 초기 출연자들이 ‘무모한 도전’ 시절의 온갖 ‘3D’ 미션들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무리한 도전’과 <무한도전>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야말로 세 프로그램에서 가장 ‘리얼한’ 프로그램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한 번 기억해보라. ‘무모한 도전’은 얼핏 보기에 유재석이 과거 ‘외인구단’과 ‘감개무량’을 통해 보여줬던 무모한 과제들에 도전하기를 한 번 더 반복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도 처음에는 왜 유재석이 저 컨셉을 그렇게 붙잡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외인구단’과 ‘감개무량’과 근본적인 점에서 달랐다.
‘외인구단’의 유명 격투기 선수와의 대결이나 차력에 도전했던 ‘감개무량’은 출연진들을 육체적으로 학대하기는 했지만, 도전 과제 자체가 너무 황당해 시합에 긴장감이 없었다. 또한 그들이 유명 격투기 선수와 싸우기 위해, 차력을 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초점은 그들이 황당한 과제를 맞딱 뜨리며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과제라 할지라도 그것은 다른 버라이어티 쇼에서 몸을 학대하는 다른 연예인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반면 ‘무모한 도전’은 도전 과제가 보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물론 출연진들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열차와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은 여전히 황당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래도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 아무리 해도 불가능해 보이거나 승리 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것,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사이의 차이는 크다. 이 때문에 ‘무모한 도전’은 ‘외인구단’과 ‘감개무량’보다 과제 수행에 있어 조금이나마 긴장감이 흘렀고, 실제로 앞의 두 코너보다 많은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은 대결 자체보다는 대결을 위한 연습 과정에 초점을 맞췄고, ‘외인구단’과 ‘감개무량’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혹독하게 출연자들의 육체를 몰아붙였다. 굳이 빨래 집게 같은 것으로 출연자들의 몸을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물론 실제로는 그런 방식으로도 괴롭히긴 했지만). 순전히 사람 힘으로 불끄기에 도전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출연자들이 양동이를 죽도록 들고 뛰어야 했고, 출연자들은 그것만으로도 쓰러질 판이었다. 출연자들 중 멤버만 잘 선정하면, 그리고 훈련을 제대로 받으면 이길 것도 같다. 옛날처럼 오버 액션을 할 틈도 없다. 웃길 땐 웃기더라도 훈련은 제대로 해야 한다.
이 때부터 ‘무모한 도전’은 그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쇼의 진실’을 보여줬다. 차승원과 함께 했던 연탄 나르기 에피소드를 기억해보라. 그 때 ‘무모한 도전’의 출연진들은 여전히 웃겼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의 코미디에서 ‘진심’을 봤다. 아무리 코미디라 할지라도 연탄 한 장을 제대로 받기 위해 산을 뛰고 구르며, 구덩이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출연진들의 모습만큼은 ‘쇼’가 아니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열심히 한 대로 표가 나고, 대충 하는 사람은 대충 하는 티가 난다. 연탄 한 장 나르기 위해 안경이 망가지다시피하면서 구덩이 밑을 기어다니는 유재석을 보며 그것을 단지 ‘웃기려고 애쓴다’라고 말할 만큼 박정한 시청자는 많지 않다. 분명히 ‘무모한 도전’의 목적은 그런 ‘몸개그’를 통해 웃기는 것이었는데, 그 몸개그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훈련의 강도를 높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버라이어티 쇼의 진실이 드러났다. 정말 웃기기 위해 저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는 거야?
이를 통해 ‘무모한 도전’은 버라이어티 쇼의 두 가지 진실을 함께 보여줬다. 하나는 버라이어티 쇼 출연자들이 사실 웃기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건다는 것. 그리고, 사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는다는 것. 보통 오락 프로그램에서 적당히 고생하는 출연진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종종 그정도 놀고 출연료 받으면 할 만하겠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약한 몸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기를 계속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몸 때문에 좀처럼 정식 대결의 멤버로 뽑히지 않는 이윤석의 모습은 유재석이 ‘무모한 도전’을 “모든 게스트가 기피하는 3D프로그램”이라 말해도 시청자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는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도록 했다. 게스트가 꺼려할 정도로 힘든 프로그램을 매주 해야 하는 출연진들은 당연히 볼품 없어 보인다. 물론 그들은 인기 연예인들이지만, 그들이 ‘무모한 도전’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그들이 일반인에 비해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같은 연예인들이 수없이 많은 버라이어티 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지 지켜봤기에 그들이 ‘연예인 중에는’ 못났다는 인식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은 연예인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몰아붙이는 ‘이기적인 세계’를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 평소에는 초코파이 하나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그리고 물 한 방이 간절할 정도로 힘든 연습을 전제로한 것이라면 그것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 생존경쟁 사이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육체적 능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노홍철은 입으로는 떠들어도 도전과제에서만큼은 믿을만한 에이스고, 육체적 능력은 중간이지만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절하는 유재석은 이기적인 출연자들을 정리하면서 프로그램의 메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윤석, 정형돈, 박명수 등은 언제나 ‘깍두기’ 캐릭터가 된다. 아직 시청자들이 확실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모한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오락 프로그램의 시스템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캐릭터의 실제 모습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리한 도전‘이 달성한 무리해 보이던 경지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모한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다른 모든 것이 가짜라 할지라도 버라이어티 쇼에서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은 진짜라는 것을 알리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모한 도전’이 직접 ‘쇼’의 진실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게 웃기기 위한 ‘쇼’라고, 사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시청자들에게 버라이어티 쇼와 출연진들에 관한 보다 많은 현실의 정보를 줘야 했다. 그 해결책이 ‘무리한 도전’이었다. 김태호 PD는 ‘무리한 도전’이 (겨울이라 춥기도 했지만) ‘무모한 도전’에서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았던 캐릭터를 보다 확실히 다듬기 위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무리한 도전’을 통해 지금 <무한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부분의 캐릭터와 인간관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리얼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이 바닥’의 진실과 이곳에서 사는 연예인들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두 개의 통로를 만들었다는데 있다.
그중 하나는 설문조사였다. 멤버들의 캐릭터를 가지고 온갖 우스꽝스러운 설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던 설문조사는 그 자체가 작은 리얼리티 쇼였다. 출연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자신의 현재 인기와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직접 확인 받았고, 이는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굳어졌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가 게임 사이에 캐릭터 간의 잡다한 정보(유재석의 비디오, 박명수의 치킨집)를 던져주면, 시청자들은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멤버들은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확실하게 굳히며, 그 순위에 따라 프로그램 내의 ‘서열’이 정해졌다. 유재석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1인자이고, 박명수는 ‘2인자’를 주장하는 꼴등이다. 여기서 <무한도전>의 모태가 되는 ‘모든 것이 가능한’ 프로그램의 형식이 만들어졌다. ‘무리한 도전’은 어느 순간부터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하는 도중 자연스레 꽁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꽁트의 완성도가 아주 높거나, 꽁트를 해야할 개연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설문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와 여섯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가 꽁트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앞서 나간다 싶으면 나머지 다섯 명이 꽁트를 통해 유재석을 괴롭히고, ‘거꾸로 말해요 아하’에서 누군가 계속 우세를 보이면 ‘쌍박’ 대결을 선언한 뒤, 다섯명이 그 한 명만 공격하면서 기를 꺾어놓는다.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에서 먹을 것을 두고 벌이던 캐릭터간의 대결을 주도권 싸움으로 바꿔놓았고, 시청자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들이 명백한 권력관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육체적인 피로도는 ‘무모한 도전’시절보다 덜해졌지만, 그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무리한 도전’은 쇼의 세계가 그 바깥의 세계를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고, 쇼의 중심을 과제나 게임에서 그 무엇이 됐건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싸움으로 변화시켰다.
예, 이것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러나 재미는 진짜입니다.
그러나, ‘무리한 도전’의 의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요소들이 시청자에게 왜 재미있게 다가왔느냐 하는데 있다. 만약 ‘무리한 도전’에 꽃미남 여섯명이 출연했다면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들의 설문조사를 보며 즐거워 했을까? (물론, 꽃미남 애호가들은 행복했겠지만) ‘무리한 도전’의 여섯 사람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잘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사실 매우 거칠고 부담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도전’이 그것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다른 멋진 연예인들에서는 ‘평균 이하’ 취급을 받는 (혹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처럼 꾸며진)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가 연예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겹쳐 있다. 평범한 시청자들 입장에서 연예계는 닿을 수 없는 곳이고, 그들이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결국 잘난 사람들이 뛰노는 곳이다. 그런데 ‘무리한 도전’의 출연진들은 연예인이 아닌 서민 시청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연예계를 바라본다.
이다해나 이영애의 전화 한통에 떨려 하고, 하하를 ‘그나마 잘생긴’이라고 표현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모습은 연예인이면서도 결코 ‘진골’이 될 수 없었던 당시 그들의 위치를 고백한 것이고, 그것은 스타의 입장보다는 시청자의 입장에 가까웠다. 그래서 ‘무리한 도전’의 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건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라고 언제나 꼴등할 필요도 없고, 저들이라고 욕심부리지 말라는 법 없다. 이 때부터 ‘무리한 도전’의 멤버들은 어떤 행동을 해도 팬들만큼은 용서해주는 일종의 면책 특권을 얻었다. 아무리 그들이 프로그램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켜도 그것은 못나고 모자란 사람들의 헤프닝이다. 아무리 캐릭터가 점차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연예계의 실제 모습들이 드러나도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는‘ 쌍박’ 정도다. 리얼리티 쇼적인 면이 점점 강조돼도 웃음을 잃지 않는 <무한도전>의 독특한 스타일은 ‘무리한 도전’에서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설문조사가 실제 세계와 ‘무리한 도전’ 사이를 연결하고, ‘거꾸로 말해요 아하’가 그것을 강화시키면, 그 위에는 캐릭터의 (나름대로) 첨예한 대립이 있어야 하고, ‘무리한 도전’의 핵심이 된 ‘못난 것들의 오락 프로그램 생존기’를 ‘재미있게’ 폭로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박명수였다. 엉뚱한 비교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마치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프로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이 WWE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리한 도전’을 통해 기존 오락 프로그램의 모든 룰을 파괴한 ‘안티 히어로’였다. <무한도전>이 WWE의 영향을 받았을리는 없지만, WWE의 현재 시스템과 지금까지의 변화 과정은 <무한도전>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 ‘무모한 도전’이 그랬듯 WWE도 과거에는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뚜렷한, 그 자체로 완결된 닫힌 세계였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에서 출연자들의 혹독한 훈련만큼은 진짜이듯, 프로레슬러들이 보여주는 육체적 기술은 (경기의 승패는 정해져있을지라도) 진짜다. WWE가 지금도 방영하는 자체 광고 중에는 경기중에 실제로 부상당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예, 이것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러나 위험은 진짜입니다.”라며 프로레슬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도 있다. 이런 두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프로레슬링은 발전했다. 그러나, 현재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입장이 그러하듯 더 이상 프로레슬링은 그들의 각본을 진짜처럼 포장할 수 없었다. 각종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프로레슬러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프로레슬링의 각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마저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헐크 호건이 온갖 악역을 때려 눕히던 시절의 스토리는 통하지 않았다. WWE는 그 시점에서 현실에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프로레슬링의 현실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어려웠다. ‘무리한 도전’이 설문조사를 이용했듯, WWE도 실제 세계와 프로레슬링을 연결하는 통로가 필요했다.
역사상 최악의 안티 히어로
그 통로 역할을 한 것이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WWE의 ‘몬트리올 스크류 잡’이었다. 워낙 길고 복잡한 배경을 가진 사건이기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WWE는 당시 챔피언이 이기기로 결정돼 있었던 시합을 챔피언 몰래 해당 시합의 심판(그것도 챔피언과 실제로 절친한 친구였다)에게 지령을 내려 챔피언이 지는 것으로 경기 결과를 뒤바꿨다. 이 때문에 방송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마무리됐고, 분노한 챔피언이 WWE의 CEO이자 최대 주주인 빈스 맥마흔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다. 이후 WWE의 선수들은 ‘진짜로’ 빈스 맥마흔에게 단체로 항의를 했고, 당시 챔피언은 지금도 빈스 맥마흔과 실제로 불편한 사이에 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았던 프로레슬링의 ‘현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됐다.
그런데 WWE는 여기서 쇼 비즈니스 역사 전체에 길이남을 최고의 각본을 선보인다. 이 사건으로 인해 WWE는 몰락의 위기에 처했지만, 빈스 맥마흔은 오히려 스스로를 ‘악역 오너’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쇼의 주인공 노릇을 한 것이다(!!!). 그는 쇼에서 회사 경영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는 모습을 현실보다 더 과장해서 보여줬고, 이를 통해 전세계 프로레슬링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스토리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고, 빈스 맥마흔이 전횡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팬들은 ‘진심으로’ 누군가가 그를 쓰러뜨리길 바랬다.
스티브 오스틴은 바로 그 때 탄생했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모든 룰을 깨뜨리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안티 히어로였다. 프로레슬링이 지켜온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의해 무너지고, 프로레슬링은 물론 현실에서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시대. 그 때 스티브 오스틴은 성경구절 대신 ‘스톤콜드 가라사대 3장 16절...’을 의미하는 ‘3:16’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며 모든 사람과 모든 권위를 때려 부쉈다. 그는 챔피언 타이틀에 크게 연연하지도 않았고, 선악 구분따윈 없었으며, 심지어 선수와 일반인도 분간하지 않았다. 수 틀리면 모두가 적이다. 심지어는 은퇴한 여성 레슬러마저 그의 필살기인 ‘스터너’의 제물이 됐다. 물론, 그 스터너에 가장 많이 당한 인물은 빈스 맥마흔이었다. 스티브 오스틴의 파격적인 캐릭터는 기존 프로레슬링 팬들은 물론 프로레슬링을 유치하게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 그는 오직 세상의 기준이 자신이 된 개인주의 시대의 미국의 안티 히어로였다 (심지어 당시 프로레슬링 시청률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그램중 하나였던 NFL의 월요일 중계와 비교될 정도였다).
박명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오락 프로그램의 현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그것을 아무도 폭로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명수는 그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폭로했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인물들에게 ‘호통’을 쳤다. 박명수에 의해 ‘톱’이 아닌 연예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부업에 열을 올리고, 기회만 되면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밝혀졌다. 다른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불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명수는 ‘무리한 도전’의 ‘연예계에서 가장 못난 자들’ 중에서도 가장 못난 자였고, 그가 그렇게 호통치는 것은 공격이라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효리에게 호통을 치고, 선배인 이경규에게 대들어도 웃음을 이끌어냈다. 박명수가 버라이어티 쇼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무리한 도전’은 자연스럽게 버라이어티 쇼의 진실들을 하나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명수는 물론 모든 멤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게스트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자신이 웃길 수 있는 부분은 악착같이 찾아 먹어야 하고, 메인이 될 능력이 없으면 ‘2인자’라도 돼야 하며, 그마저도 못한다면 1인자와 친해 놓으며 ‘줄’이라도 잘서야 한다. ‘무리한 도전’은 버라이어티 쇼의 진실을 드러내면서도, 박명수처럼 그 모든 것을 불쌍한 자학으로 변화시키는 캐릭터의 재미를 통해 그것들을 웃음의 소재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명수는 설문조사상으로는 꼴등이었지만 실제로 ‘2인자’였다. ‘나름대로 잘생긴’ 것보다는 가장 못 생긴 사람 취급 받더라도 눈에 띌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 좋은 것. 그것이 버라이어티 쇼의 리얼리티였다.
유재석, 거인의 어깨를 가진 플레잉 코치
그러나, 박명수는 ‘무리한 도전’의 세계관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되 결국 ‘2인자’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그리고 김태호 PD를 비롯한 <무한도전>의 제작진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송스럽지만, 이 글의 성격상 가식 떨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무한도전>에서 다른 멤버들보다 더 큰 영향력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오직 유재석뿐이다. 그건 단지 ‘1인자’인 유재석이 실제로 인기가 많고, 진행을 잘해서가 아니다. 또 ‘무모한 도전’의 컨셉을 오랫동안 그 컨셉을 시도하며 개선한 사람이 유재석이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못난 사람들의 잘나기 위한 경쟁’이라는 <무한도전>의 세계 자체가 <무한도전> 안에서는 물론 실제 연예인으로서도 유재석이 보여주는 태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이 지금처럼 성공하기 전부터 이미 최고의 MC였다. 하지만 유재석은 어느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옆에 앉아 있던 이영애에 대한 부끄러움을 드러낼 정도로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밴 인물이다. 이것은 다시 <무한도전>에서 개그우먼 김미진이 이영애 흉내를 내며 여섯 사람을 속이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유재석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스타로 생각했던들 이영애의 전화 한 통에 온갖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도전’에서 유재석의 위치는 매우 독특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못났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한발짝 떨어져 멤버들의 못난 짓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논평한다. 박명수가 온갖 헤프닝을 벌일 때, 하하가 그나마 잘생겼다고 주장할 때, 한숨을 내쉬거나 그들을 조롱하며 “이거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유재석의 몫이었다. 그것은 그가 현실 세계에서도 다른 멤버들보다 스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리한 도전’이 점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그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1등을 하면서 그의 캐릭터는 공고해졌다. 이제는 거의 시청자 논평에 가까운 <무한도전>의 자막이 본격적인 역할을 하기 전, 유재석은 <무한도전>에게 시청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함께 했다. 김태호 PD의 표현대로, 그는 ‘무리한 도전’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코치 역할도 하는 ‘플레잉 코치’를 했다.
1인자만 좋은 게 아니야
하지만 ‘무리한 도전’은 단지 유재석과 박명수의 대립관계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무리한 도전’의 모든 멤버들은 “제발 놓치고 싶지 않아!”를 외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펼쳐나갔고, 멤버들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서 가장 유니크한 역할을 한 것이 노홍철이다. ‘무리한 도전’의 대립구도에서 노홍철과 하하는 늘 대립구도의 중심이 되는 대신 누군가의 편에 붙는 역할을 했고, 이는 ‘무리한 도전’의 스토리라인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노홍철은 하하와는 또 다른 나름의 권력을 가졌고, <무한도전>에서 가장 속 편한 위치에 있다. 박명수는 2인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고, 늦게 들어온 데다가 정형돈 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진 것 외엔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정준하는 노홍철과 하하 등에게 형으로 불리긴 하지만 ‘자기편’하나 갖기 힘든 처지다. 그는 노홍철에게 ‘형님’이면서도 ‘질펀한 엉덩이’ 취급을 함께 받는다. 유재석이 ‘유반장’이고, 박명수가 1인자가 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아버님’이라면 정준하는 박명수처럼 유재석에게 대놓고 저항하지는 못하고(그는 ‘슈퍼모델’편에서도 팀의 분위기를 주도하려다가 유재석의 한마디에 물러나야 했다), 그렇지만 듬직한 체격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만큼은 마음껏 베푸는 마음 씀씀이 때문에 미움받지 않는 착하지만 만만한 형이다.
반면 노홍철은 누구에게 붙어도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 나설 수도 있다. 그는 어리기 때문에 1인자가 될 이유는 없지만, 어리다고 해서 <무한도전> 팀 내에서 무시당할 이유는 없다. 늦게 합류한 몇몇 멤버들과 달리 노홍철은 ‘무모한 도전’시절부터 미친 듯이 연탄을 나르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고, (마법의 구두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무한도전> 멤버중 가장 키가 크고, 젊고, 얼굴도 매력적인 편에 속하며, 심지어 토익 성적도 좋다. 그는 실제 세계에서 연예인이 아니었더라도 나름대로 (소녀‘떼’는 아니어도) 소녀 팬은 만들 수 있을만한 남자다. 그래서 그는 ‘무리한 도전’과 <무한도전>에서 모든 캐릭터를 공격하거나 응원할 수 있고, 심지어는 충고할 수도 있다. 그가 뭘 하건, 여섯 사람은 그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꽤 훤칠한 허우대 때문에 유재석 다음으로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슈퍼모델’ 편에서 드러나듯, 그는 <무한도전>내에서 언제든 그 존재감이 부각될 수 있는 ‘2인자 후보’다. ‘무리한 도전’시절 아무리 멤버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학해도, 노홍철은 종종 자학대신 ‘자뻑’을 할 수도 있었다.
하하는 그런 노홍철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집단의 단위로 확대했다. 하하는 합류하는 순간부터 ‘나름대로 잘생긴’ 하하였고, <무한도전> 팀의 ‘젊은 피’였다. 이는 서로를 칭찬하는 노홍철의 주고받기와 더불어 <무한도전> 내에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다. 그들은 죽이 잘 맞는 친구였고, 때론 서로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공방전도 벌일 수 있었으며, 서로 비교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정준하가 누군가를 ‘우리편’이라고 말했을 때, 그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노홍철, 하하, 그리고 정형돈이다. 박명수와 유재석으로만 한정지었을 때는 대립관계만이 반복되는 스토리가 그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된다. 김수로의 몰래 카메라 편에서 유재석과 박명수중 유재석의 편에만 서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라인’ 문제를 코믹하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들을 통해 ‘무리한 도전’과 초기의 <무한도전>은 세트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여섯 사람은 ‘무리한 도전’을 거치며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정서를 포착했고, 오락 프로그램의 현실을 폭로하며, 그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안겨줄 안티 히어로도 만들었으다. 그리고 그런 박명수의 활약을 기반으로 ‘무리한 도전’은 쇼 바깥 세계의 오락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타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버라이어티 쇼도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한 ‘무리한 도전’은 ‘쥐잡기’나 ‘당연하지’를 패러디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세계의 충돌
그러나, ‘무리한 도전’은 버라이어티 쇼가 가진 근본적인 한가지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한계는 출연자들이 아무리 싸워도 사실은 모두 친할 것이라는 시청자들의 어떤 믿음 때문에 생긴다. 시청자들이 아무리 누가 누구하고 친하네 안친하네, 누구는 누가 키워주네라고 이야기한다 해도,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 뒤에서 실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실제로 그것을 그다지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리얼리티 쇼라도 정상급의 연예인들이 싸우고 욕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무리한 도전’은 그런 연예인간의 ‘어색한’ 실제 관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무리한 도전’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쇼였지만, 매번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버라이어티 쇼의 안전한 코미디 안에서 결론이 나는 ‘무리한 도전’의 고정된 형식은 그것이 반복될수록 점점 식상해질 수 밖에 없는 기존 버라이어티 쇼의 위험에 노출 돼 있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리고 ‘무리한 도전’에서 보여준 형식 파괴를 극대화 시켜 캐릭터들이 무엇을 하건 용인될 수 있는 <무한도전>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버라이어티 쇼에서 지켜온 마지막 금기를 깰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것은 쉽지 않았다. ‘무리한 도전’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사이에 은근히 드러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진실은 그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티격태격하는 멤버들이 ‘정말로’ 사이가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 과연 시청자들은 거기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보다 실제 세계에 더 가까운 쇼였지만, 그것은 버라이어티 쇼의 영역을 더욱 넓힌 것이었을 뿐, 버라이어티 쇼를 완전히 현실과 연결시킨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묻는 질문. 대체 어떻게?
건방진 뚱보는 어떻게 어색한 정형돈이 됐는가
정답. 정형돈(이 글에서만큼은 정형돈이 빠지지 않는다!). 모두에게 존재감없고, 심지어 어색한 것이 컨셉이 돼버린 정형돈. 그러나, 그는 <무한도전>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될 인물이다. ‘무리한 도전’에서 박명수가 쇼와 실제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를 했다면, <무한도전>에서는 정형돈이 그 ‘입구’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왜 ‘어색한’ 컨셉인지 생각해보라. 그의 어색함은 하하와 실제로 친하지 않고, 실제로 잘 웃기지 못하거나, 또는 존재감이 없다고 놀림받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다. 박명수는 <무한도전> 안에서만 놀림받으면 그만이지만, 정형돈의 고민은 연예인으로서 그의 실제 고민과 매우 흡사하다. <무한도전>이 진정 리얼해질 수 있는 것은 정형돈의 캐릭터가 어느 순간 버라이어티 쇼에서 보여줄 수 없었을 것 같은 그 어색함과 고민의 순간들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의도된 것은 아니다. 마치 WWE가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통해 그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팬들이 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제 세계와 연결시킨 것처럼, <무한도전>이 정형돈을 통해 <무한도전>과 <무한도전> 바깥 세계를 연결시킨 것은 시청자들이 싫든 좋든 버라이어티 쇼의 실제 상황을 그대로 보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상상플러스>에서 벌어진 이휘재의 손가락 욕설 사건. 그것은 스포츠 신문에서나 이니셜 놀이로 떠돌던 연예인간의 알력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이 사건 이후로 정형돈은 더 이상 ‘건방진 뚱보’가 될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그 사건 이후 정형돈을 오락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아닌 <상상플러스>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방송 도중 더 센 위치에 있는 MC에게 손가락 욕설을 먹어야 하는 불쌍하고, 의기소침한 인물. 그 때부터 정형돈은 뭘 해도 사람들을 웃기기 힘들었다. 그 자신이 위축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가 당한 일이 떠올라 그의 유머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바로 그 정형돈을 이용해 실제 세계와 조우했다. 다른 캐릭터들이 하하와 친하지 않다면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짜고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거나, 너무 생경해서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사건 이후 정형돈은 버라이어티 쇼에 어울리지 않는 그 어색하고 거친 현실의 무게를 일정부분 담고 있는 이미지를 가졌고,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정형돈과 하하의 어색함을 ‘진실’로 생각했다. 정형돈이라면 저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그런 일들에 대한 정형돈의 태도가 실망스럽다기 보다는 안타까운 느낌을 유발한다. (김태호 PD는 ‘빨리 친해지길 바래’ 이후 하하가 의도치 않게 인터넷에서 비난을 받은 것에 안타까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형돈의 캐릭터는 단지 현실과 쇼의 경계를 잇는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정형돈이 존재감이 없다거나 뭘 해도 어색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무한도전>의 어떤 특성을 대표한다. <무한도전>이 오락 프로그램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뉴질랜드 특집’을 통해 하하와 정형돈의 어색한 사이가 공개되고, 그에 이어 ‘빨리 친해지길 바래’를 통해 <무한도전>이 리얼리티 쇼의 영역에 다가서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또한 정준하가 단지 ‘질펀한 엉덩이’가 아니라 동생을 이것저것 챙겨주는 캐릭터로 거듭난 것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정형돈의 집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여전히 버라이어티 쇼적인 ‘자뻑과 자학사이’의 특징을 유지하는 다른 캐릭터들은 챙겨준다 해도 그 효과가 크지 않은 반면, 이미 실제 모습과 캐릭터가 일치 돼버린 정형돈의 모습은 정준하의 행동을 시청자들이 그의 진심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어색하고 존재감 없다고? 그 어색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이 늘 무시당하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때마다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을 재인식 시켜줬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전체적으로 코믹한 버라이어티 쇼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인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존재감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것이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정형돈의 현재 캐릭터는 <무한도전> 팀에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우열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도전>은 거의 실시간으로 <무한도전>에 대한 <무한도전>바깥의 시선과 평가를 업데이트 하고, 그 상황을 통해 그 때 마다 적절한 컨셉을 내놓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한도전> 멤버들이 디자이너 이상봉의 패션쇼에 정식으로 도전하는 ‘슈퍼모델’ 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무한도전>이 그만큼의 힘을 가진 오락 프로그램이 됐기 때문이다. ‘슈퍼모델’ 편이 적나라하게 보여줬듯, 이들이 뭔가 하면 국내 모든 엔터테인먼트 관련 언론들이 따라 움직인다.
새로운 시대
즉,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더 이상 ‘무리한 도전’처럼 세트 안에서만 놀며 자신들이 못났다고 주장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무한도전>이 버라이어티 쇼와 현실을 연결시키고,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철옹성같았던 KBS <스펀지>를 넘어서면서 <무한도전>의 출연진은 이미 스타가 됐으며, <무한도전>은 그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유재석의 ‘국민적 인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이 됐다. 유재석은 ‘무리한 도전’에서는 그나마 ‘못난 중 그래도 인기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유재석은 그냥 ‘국민 MC’다. 어느 순간부터 <무한도전>은 계속 '유반장‘의 인기와 진행솜씨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김장특집‘에서는 한국의 모든 메이저 매체들이 유재석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왔으며, ’슈퍼모델‘ 편에서는 유재석이 런웨이에 서자 등장하자 수많은 플래시가 터진다. 심지어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몸매까지 좋아 디자이너 이상봉이 그를 메인모델로 선택할 정도다. ’무리한 도전‘ 시절 유재석이 나머지 다섯의 은근한 질투를 받는 못난이 반의 ’유반장‘이었다면, <무한도전>의 유재석은 김태호 PD에게 “야 너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며 PD에게 반말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물론 그것은 김태호 PD가 유재석을 비롯한 여섯 사람과 매우 친밀한 관계일뿐만 아니라 유재석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자기 스스로가 <무한도전>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자각하며 메인 MC역할을 하는 ’유팀장‘이다. '슈퍼모델’ 편에서 그가 정준하의 멘트를 막으면서까지 메인 MC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이기심 이전에 진행 흐름의 문제이다. 지금은 과거처럼 중구난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엔 한명과 다른 다섯명 사이에 너무나 분명한 우열이 존재한다. 다른 다섯명이 “우리도 연예인인데”라고 말할 정도로.
물론,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 <무한도전>에 이르며 프로그램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바꾸는 유재석의 능력은 그가 왜 현재 한국 최고의 MC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유재석의 ‘속일 수 없는 인기’는 유재석과 나머지 다섯 명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렸다. 박명수는 더 이상 유재석과 대립하기 보다는 ’2인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노력하는 늙고 힘없는 ’아버지‘ 캐릭터로 변신했고, 하하와 정형돈, 노홍철은 ’유재석라인‘에 서려 한다. 유재석이 어느 순간부터 ’짜증‘내는 캐릭터 컨셉을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유재석의 단점을 보여줘야 <무한도전>의 멤버 간 밸런스가 그나마 맞춰진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조차 현실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정형돈의 캐릭터는 <무한도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출연진들의 현실적인 불안과 고민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유재석이 런웨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그는 모델을 하기 어려운 체형을 가진 그는 아등바등 노력해야 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은 무시 당한다면서 불만을 터뜨린다. 정형돈의 존재로 인해 <무한도전>은 코믹한 버라이어티 쇼를 넘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휴먼 드라마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미 최고의 인기스타인 유재석이나 자기 캐릭터를 완성한 박명수, 밖에 나가도 번듯한 노홍철이 패션쇼에 서는 것과 정형돈이 패션쇼에 서는 것 중 어느쪽이 더 드라마틱하겠는가. 김태호 PD가 말한대로 <무한도전>이 하나의 성장 드라마가 될 수 있다면, 현재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것은 정형돈일런지도 모른다. 다른 캐릭터들은 인기를 더 얻느냐 그러지 못하느냐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정형돈은 그의 현실의 고민을 털어내고 과거의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 밖으로 나오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현재 <무한도전>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무모한 도전’부터 <무한도전>까지 이르는 동안 여섯사람은 그들 내부에서 만들어놓은 캐릭터와 세계관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면서 서서히 인기를 얻어왔다. ‘무한시리즈’의 마니아들은 ‘이기주의’를 내세우며 오락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솔직한 심리를 보여주는 그들을 현실속의 친구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여섯 사람은 차근차근, 그리고 안전하게 성장했다. 그들이 아무리 서로 헐뜯고 싸운다 해도 그것은 가족이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가까웠고, 언론에서 아무리 프로그램에서 욕이 등장하네, 너무 자학적이네 하는 소리가 나와도 제작진부터 마니아 팬들까지 모두 그들을 보호했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가족모임에 가깝고, 그들이 온실속의 화초처럼 조심스럽게 성장했다는 김태호 PD의 말은 진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무한도전>에서 그들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 <무한도전>은 이제 마니아뿐만 아니라 얼토당토않는 악플을 다는 정신나간 일부 네티즌들까지 관심을 가지는 인기 프로그램이 됐고, 출연진들은 <무한도전>에서조차도 자신의 인기를 확인 받는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의 <무한도전>이 멤버들이 프로그램 안에서 시너지를 일으키며 성장하는 구조였다면, 현실과 버라이어티 쇼의 세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의 <무한도전>은 유재석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사람이 <무한도전> 바깥에서 진짜로 더 큰 인기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무한도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런 <무한도전>의 문제는 김수로의 몰래 카메라 에피소드를 통해 어느정도 드러났다. 이 에피소드는 분명히 <무한도전>에 많은 것을 가져다 줬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무한도전>은 완벽하게 리얼리티 쇼를 프로그램 안으로 흡수했고, 김수로 때문에 당황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멤버들의 순수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특히 이 에피소드는 <무한도전>이 단지 캐릭터 쇼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대한 개념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자신만만한 ‘스타’ 김수로가 어수룩한 여섯명을 놀린다는 설정은 <무한도전>의 세계관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김수로를 클로즈업된 상태에서 조금 아래에서 잡으며 스타로서 그가 가진 무게감을 강조하는 반면, <무한도전> 멤버들은 초라하게 숨어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어리버리한 그들의 캐릭터를 강조했다. 게다가 여섯명이 김수로를 속이기 위해 짜낸 그 유치한 속임수들을 마치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처럼 묘사하며 에피소드를 긴박하게 끌고 가는 연출은 가히 올해 오락 프로그램중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처음에는 김수로, 유재석 팀, 박명수 팀으로 나눠져 있던 출연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로 뭉쳐지고, 그 사이에 하나씩 김수로에 대한 속임수가 펼쳐지면서 마치 삼자 대면을 하는 듯한 편집이 이어진다. 어디에도 세련된 세트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삼원으로 분리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한 곳으로 모이고, 방송국에 들어가는 김수로의 동선을 따라 긴박하게 그를 추적하듯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며, 그에 이어 김수로를 따라온 유재석 팀의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며 <무한도전> 팀의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한도전>의 연출과 촬영은 해외 리얼리티 쇼만큼이나 세련돼 보였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를 통해 멤버들은 그들이 현재 현실의 연예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박명수를 제외한 네명의 출연진이 유재석과 함께 진행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그것은 <무한도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과 장난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유재석이 온갖 돌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면서 국민 MC다운 화려한 진행솜씨를 보여주는 사이, 박스에 숨은 박명수가 좀처럼 제대로 된 진행을 하지 못하면서 유재석과 박명수의 우열관계는 ‘현실’이 된다. 제대로 된 진행을 못하는 박명수의 모습이 웃길 수도 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는 ‘무리한 도전’의 세트 안이 아닌 엄연한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박명수의 어색한 진행은 컨셉이 아니라 정말로 어색한 것처럼 보였다. 이건 박명수의 실제 이미지에도 손해다. 물론 팬들은 그래도 그를 좋게 봐주겠지만, 이럴수록 유재석과 박명수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그게 컨셉이든 실제이든, 사람들은 그의 진행솜씨를 의심하게 된다. 해결책은 박명수가 진행 실력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 밖에 없다.
Show must go on. Please.
다른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수로가 본격적으로 여섯 사람을 속였을 때,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은 굉장히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당한 스타 김수로가 못난 여섯 사람에게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 즐거운 광경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갈등이 극대화 되더라도 <무한도전> 출연자들끼리 있었을 때 그 상황은 즐거운 버라이어티 쇼의 형식 안에서 소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의 게스트가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선배, 혹은 스타 연예인이 자신들을 압박할 때 ‘눌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좀 더 인기를 얻어 <무한도전>의 세계관 자체가 변해야할 필요가 있다. 게스트 한 명에 휘둘리고, 그룹 신화만 나오면 일단 자학부터 해야 하는 <무한도전>이 아니라 그들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무한도전>이 돼야 한다. <무한도전>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일본의 <SMAP X SMAP>가 일본 최고의 오락 프로그램으로 장수할 수 있는 것 역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룹 스맙의 멤버 전원의 큰 인기가 중요한 이유를 차지한다. ‘일본 최고의 남자’ 기무라 타쿠야는 물론, 스맙의 멤버는 모두 일본 연예계 최고의 스타들이다. <SMAP X SMAP>는 그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의의를 가지고, 그런 그들이 <SMAP X SMAP>에서 함께 모여 즐겁게 노는 모습이 그들에 대한 호감을 더욱 높인다.
<무한도전>은 <SMAP X SMAP>와는 정반대로 바깥 세상의 인기와 별개로 프로그램안에서 ‘못난 사람들’의 컨셉으로 시작한 캐릭터를 오랜 시간을 들여 프로그램 안에서 캐릭터를 착실하게 성장시켰다. 이는 지금의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단서다. 캐릭터, 충분한 시간, 그리고 쇼와 현실의 절묘한 결합. 이를 통해 <무한도전>은 1년동안 식상해 지는 대신 오히려 점점 더 새로운 오락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무한도전> 안에서만은 클 수 없는 임계점까지 이르렀다. 이제 <무한도전>은 실제 세계로 걸어 나간 여섯 남자들이 밖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와야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이젠 정준하가 MBC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더 인기를 얻어 최소한 박명수와 ‘2인자 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구덩이를 파고 연탄을 나르던 ‘무모한 도전’ 시절이나, 진짜 패션쇼에서 환호를 받는 지금이나 그들의 무한한 도전은 계속된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의 생존을 위해 도전했다면, 지금은 또 한번의 성장이냐 정체냐를 두고 도전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프로그램만이 아닌 여섯 남자 개인의 도전이자,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진화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유재석이 아나운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고, 박명수는 제 8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하하와 노홍철이 각각 기상캐스터와 ‘빨간 하이힐’과 사귀며, 정준하가 ‘연기자’가 되고 정형돈이 인생을 리얼리티 쇼로 만들었던 그 1년. 그 시간동안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을 ‘리얼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버라이어티 쇼와 리얼리티 쇼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국 오락 프로그램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매회 방영될 때마다 마니아적인 열광과 악플이 난무하고, 순식간에 인기가 등락을 거듭하는 리얼 월드에 발을 내딛었다. 그들은 과연 여기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실이 그러하듯,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분명한 것은 단 두가지 뿐이다. <무한도전>이 다음주에도 방영된다는 것, 그리고 필자가 불법 다운로드를 제외한 무슨 방법으로든 다음회를 볼 것이라는 것.
<원출처:http://home.freechal.com/triplec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