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라는 제목이지만 이 영화는 동물애호 영화는 아닙니다. 첫 화면에서부터 요란하게 알록달록 색칠을 당한 우리의 거북 군은 수난을 당하는 영화이지요. 이 영화는 거북이의 수난사를 다룬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동물 휴먼 드라마 ... 잉? 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농담들은 바로 저런 식의 농담들이 대부분입니다. 약간 어이없으셨거나 짜증나셨더라면 이 영화를 보시면 아마 더욱더 그런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름을 모릅니다만 앞으로 이름을 기억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그가 "시효경찰"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효경찰의 시나리오 역시 이 사람이 했어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역시 이 사람이 각본, 연출을 모두 맡았습니다. 그는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쿠도 칸쿠로에 못지않은 컬트적인 존재감이 되어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그가 시효경찰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특징들은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말장난에 황당한 전개.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이 하나도 없는 세계들 말이죠. 시효경찰이 드라마의 특성상 장르적인 특징을 파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런 농담의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정말 막 나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굉장히 즐겁고 시효경찰보다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헌사입니다. 특별해지는 것보다 평범해지는 것이 어렵다는 패러독스적인 진실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재치 있게 풀어냅니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우에노 주리의 연기는 그녀의 평범한 (?) 외모와 더불어 빛이 납니다. 오들리 또뚜가 아닌 아멜리에를 상상할 수 없듯이 이 영화의 우에노 주리는 영화 그 자체입니다. 작지만 평범한 일에 기뻐하라는 주제의식을 우에노 주리는 뇌쇄적인 "헷헷헷헷" 이라는 다소 정체불명의 웃음소리를 통해 설파합니다.
이 영화는 작고 보 잘 것 없고 조잡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마 유머적 취향이 영화와 맞지 않다면 영화를 보던 극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평범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극장 직원에게 애꿎은 불평들을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지루한 일상들도 잠시나마 빛나 보였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처럼 말이죠.
ps1. 이 영화의 포스터나 다른 곳에서 는 우에노 주리 아오이 유우의 공동주연으로 보이지만 실상 아오이 유우의 비중은 거의 없습니다.
ps2.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에노주리의 "스윙걸즈"가 조금 선전을 해준다면 가능하겠지요.
ps3. 이 영화에서 스파이 부부역할을 한 배우들은 시효경찰에서도 나옵니다. 이분들의 성함을 알고 싶군요. 쿠도 칸쿠로처럼 이 감독도 자기만의 배우들을 쓰는 걸 즐겨 하는 거 같습니다.
ps4. 우리나라에 쿠도칸쿠로나 이 감독과 비슷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아마 초기에 장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의 장진은 어줍잖은 한국블록버스터 예산을 가지고 어설픈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대되는 감독임은 틀림없어요.
ps5. 포스터를 뚜렷이 쳐다보고 있으니까 감독의 이름이 보이네요. 미키 사토시라는 이름입니다. 아마 기억할만한 이름일 거에요.